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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 목소리가 말했다.
‘여자가 정신 차린 것 같네요.’
로자나는 콧구멍을 간질거리는 담배 냄새에 정신을 차렸다.
따끔거리는 연기에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그녀의 스카프는 사라지고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마을로 돌아와, 봄의 화전 연기에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며, 푸른 나뭇가지들이 불길에 잡아먹히며 수액이 쉿쉿거리는 것을 들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자매들도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혼자 서 있었고, 그녀의 가족들은 추위를 피하려고 데운 포도주를 홀짝이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했다.
불이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녀’ 라는 속삭임이 들려왔고, 그녀는 이전에 재능이 있던 어린 소녀들에게 내려진 형벌을 떠올렸다.
집안에서 마지막으로 점술의 재능이 있던 할아버지의 이모님은 이단심문관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었다.
마을의 사제가 그녀의 재능을 보고하자마자 지그마 교단은 그녀를 보호 아래 두었기 때문에, 로자나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녀는 알트도르프의 성당으로 보내져 교단을 섬기기 위해 키워졌다.
늘 뾰족한 바늘 때문에 피흘리던 그녀의 차가운 손, 어쩌면 평생 삯바느질꾼으로 살아갈 거라고 상상하곤 했었는데.
다른 마을 주민들처럼, 가족들은 속으로 그녀가 떠나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모든 비밀을 알았다.
짙은 연기가 강한 바람에 실려 주위를 휘감았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옅어지는 연기와 함께 꿈이 끝났다.
그녀는 알트도르프로 돌아와 있었다.
누군가 그녀의 코 밑에서 연초 곰방대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저리 치워요.’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다 죽어요.’
그녀는 자갈 위에 앉아 몸을 끌어안았다.
주변에는 세 사내들이 있었는데, 두 명의 경관과 한 명의 초록 망토를 두른 훌륭한 신사였다.
경비대원중 하나인, 평상복 차림의 대위가 곰방대를 흔들었다.
기억하기로는, 부둣가 경비대의 디콘이었다.
그녀가 그것에 잡아먹히기 전에 자기소개를 했었지.
그것.
공포.
‘충격을 받은 것 같소.’ 고관이 말했다.
‘뭐라도 점쳐지더이까?’
그녀는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저 붉은 빛이 번쩍이는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어둠 속에서 눈을 보았던 것 같지만,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쓸데없군.’ 대위가 중얼거렸다.
‘정박아를 보냈어.’
‘아니오.’ 고관이 말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수녀, 도움이 필요하오?’
그가 팔을 내밀자 그녀는 꼭 붙잡았다.
빛바랜 뼈와 벗겨진 갑옷이 가득한 평원에서, 병사들과 괴물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일격을 막아내었다.
그녀는 텁수룩한 갈기와 손가락만한 이빨을 가진 거대한 괴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고관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그녀는 몇 번 비틀거리며 발을 뗐다.
머리 속의 환상은 밀어냈다. 신경쓰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다.
발목이 조금 약한 것 말고는 전부 멀쩡했다.
‘저는 수녀가 아닙니다, 나리.’ 그녀가 말했다.
‘저는 여자일 뿐입니다. 로자나 오풀스.’
‘요한 폰 메클렌베르크 남작이오, 반갑소. 허나 당신은 울릭 대성당에서 나온 걸로 아는데.’
‘예, 하지만 저는 성직자가 아니라 점쟁이일 뿐입니다. 재능은 타고났지만 다른 여인들보다 특별히 더 영적이지는 않지요. 죄송합니다.’
남작은 고개를 약간 숙였다.
로자나는 대성당에서 치러졌던 제후국 행사에서 그를 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황제 본인의 옆에 서 있었지.
선제후.
예절에 대해 신경을 좀 써야할 것이다.
그녀는 그에 대해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고, 얼핏 보았던 환상들이 이해가 갔다.
‘오풀스 양.’ 여태껏 말을 하지 않았던 경비대원 중 하나가 입을 뗐다.
‘뭐라도 보셨나요?’
‘이 친구는 엘제서요.’ 남작이 말했다.
‘부둣가 경비대에서 좀 똑똑한 이들 중 하나지.’
디콘 대위는 코웃음치며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로자나는 굳이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경비대장은 폰 메클렌베르크 남작이 참견쟁이 호사꾼이고, 엘제서는 배울 것이 많은 성급하고 순진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엘제서는 그녀와 악수했고, 높게 뻗은 나무들과 맑은 공기의 인상이 느껴졌다.
‘라이크발트.’ 그녀가 말했다.
엘제서는 감명받은 것 같았다.
‘그러지 마. 그냥 속임수야.’
‘도착하셨을 때 말이오.’ 남작이 말했다.
‘뭐라도 점쳐진 게 있었소?’
그녀는 기절하기 전의 어둠 너머로 되돌아갔다.
마차 문을 열고 자갈에 발을 디딘 게 떠올랐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녀는 비명의 환청을 들었고, 길고 섬세한 옷을 입은 누군가가 울부짖는 동물 위로 몸을 구부리고 예술에 몰두한 것을 보았다.
아니, 동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 한때는 – 여인이었다.
‘끔찍했어요.’
‘야수를 보았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생겼소?’ 남작이 물었다.
‘긴... 녹색의... 외투...’ 그녀가 말했다.
‘외투?’ 그가 그녀의 팔꿈치를 잡았다.
그녀는 망토가 잔물결을 이루는 것을 보았고, 벨벳 속에 수놓아진 금실에 마음을 빼앗겼다.
‘긴... 녹색...’
‘이건 쓸데없는 짓입니다.’ 디콘이 말했다.
‘똑같은 가짜 흔적을 따라가잖아요.’
‘아니.’ 그녀가 말했다.
‘외투가 아니에요...’
‘망토?’ 엘제서가 물었다.
‘이것처럼?’ 남작이 말했다.
‘예... 아니오... 어쩌면.’
‘멋지네.’ 디콘이 쏘아붙였다.
‘네, 아니오, 어쩌면. 정말이지 크나큰 도움이야.’
‘아가씨에게 기회를 주시오.’
경비대원은 뚱한 표정으로 갈색 연기를 뱉었다.
‘예, 남작님. 저 여자는 하늘이 구름으로 가득 차 있어도 소나기를 점치지 못할 것 같지만요.’
로자나는 대위에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휘청이는 척 하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디콘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마음이 그에게 닿도록 했다.
‘아, 대위님. 참을성이 없으시네요. 집으로 가셔서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시는군요.’
‘실수하신 것 같은데요, 오풀스 양.’ 엘제서가 말했다.
‘대위님은 아내는 있으시지만, 제가 알기로는 아이는 없거든요.’
디콘은 약간 안색이 어둡고 찔리는 데가 있는 것 같았다.
‘아, 죄송합니다. 선명한 인상을 받아서요. 가끔 이런답니다. 이제 보니 아내분에겐 아이가 없으시군요.’
‘그래.’ 디콘이 말했다.
‘댁이 상관할 바 아니기도 하지.’
‘하지만 아이가 있으시네요. 두 명. 소년과 소녀. 아우구스트와 아날리제. 넷과 둘. 그리고 여인도 하나 있으시군요. 이름이 뭔가요?’
‘대위님의 아내분은 헬가라는 분이세요, 오풀스 양.’ 엘제서가 말했다.
로자나는 젊은 경비대원이 정말로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상관의 당혹스러움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헬가요, 응? 제가 크게 실수한 것 같네요. 제가 아는 이름은...’
‘시간낭비는 충분히 한 거 같은데.’ 디콘이 말했다.
‘...피피.’
엘제서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고, 디콘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면서 자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쪽으로, 오풀스 양.’ 남작이 말했다.
그녀는 다시 그의 팔을 잡았다.
디콘은 그녀에게 닿지 않도록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로자나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두려웠다.
그녀는 의무감이라고는 없이 이 일에 지원했으니까.
그녀는 결코 바란 적 없었지만, 지그마 교단은 회색 산맥 출신의 가난한 삯바느질꾼이었던 그녀를 교육시키느라 많은 돈을 썼다.
고로 대성당에 자신의 재능을 쓸 빚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대성당은 알트도르프 시에 3천 년 동안 내려오는 빚이 있었다.
빚과 빚 위에 놓인 그녀는, 두 선술집 사이의 골목으로 발을 들여놓아 또 한 번 죽음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남작은 마치 아주 늙은 공작 부인을 마차에서 내리도록 돕는 것처럼 그녀를 이끌었다.
그는 그녀를 골목으로 안내했고, 다른 경비대원들은 길을 트는 하인들처럼 보조를 맞추었다.
‘모두 물러서.’ 디콘이 말했다.
‘여자 혼자 들어간다.’
경관들은 골목에서 나와 거리에 섰다.
로자나는 담요 아래에 놓인 형체를, 담요에 퍼져나간 붉은 반점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 그녀는 장례 전에 할머님의 이마에 입을 맞춰 달라고 부탁받았었다.
그녀는 폐가 찐득한 액체로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각혈할 때까지 기침을 했다.
그때 즈음, 부모님들은 그녀의 ‘감정’ 에 익숙한데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후로 묘지를 멀리했지만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첫 남자친구와 선술집의 침대에 누워 있을 때에도, 그녀는 그 침대에서 죽어간 세 사람들의 임종을 경험했다 :
심장이 시들해진 노인,
사고로 인해 가슴팍 대부분이 날아간 젊은 사냥꾼,
겨우 10대인 어머니에게 질식당해 죽은 바라지 않던 아이.
결코 익숙해질 것이 아니었다.
‘야수와 마주한 게 처음이오?’ 남작이 물었다.
‘예.’
‘점쟁이는 불러 본 적 없습니다.’ 대위가 말했다.
‘새로운 접근이지요.’
‘살인 사건에 대해 뭘 알고 있소?’
‘야수가 여인들을 죽이고, 사지를 찢습니다.’
그녀는 다시 남작만의 야수를 떠올렸다.
볼프라는 이름을 가진 자.
그의 숨결을 맡았으며, 가죽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예, 남작님.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중요할 것 같네요.’
‘훌륭하오.’
‘첫째로 할 일은.’ 엘제서가 말했다.
‘이게 다른 사건들과 동일한지 확인하는 겁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로자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죠.
일백 선술집 거리에서 떨어진 골목에서는 특히나 더요.
이 여인은 몇 년 전에 한 사내를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내에게는, 야수를 조용한 보복의 도구로 보는 친구나 지인이 있었을지도요.
아니면 보는 대로 배운 미치광이거나.’
‘이해하지 못했소.’
엘제서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폭력은 역병과도 같아, 마구 퍼져나가죠.
야수가 모방범에게 자극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와 같은 살인 사건에서는 대개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뭘 찾아보아야 할까요?’
엘제서는 얼굴을 붉혔는데, 분명 당혹스러운 게 분명했다.
‘음... 어... 먼저, 먼저 그녀가... 어... 추행을, 음, 전후에...’
‘쟤는 여자가 강간을 당했는지 묻고 싶은 거요, 오풀스 양.’
로자나는 카오스 사교도회의 게하임니슈나흐트 의식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돌 제단을 조사했던 것을 기억했다.
말 그대로 수십의 산제물들이 그곳에서 강간을 당했고, 그녀는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느꼈다.
그 후, 제물들은 모두 목이 잘렸고, 사교도들은 피를 마셨다.
‘다른 피해자들도 그랬나요?’ 그녀가 물었다.
‘그렇진 않소. 보통 성범죄가 이정도로 포악하다는 건 일이 잘 안됐다는 뜻이니. 이해하시겠소?’
‘분명히요.’
‘이런 미치광이들은 보통 발기부전이나 불구자로 드러나죠. 대부분 의모증이 있고.’
골목에 있던 여인은 흐릿해지지 않았으나, 로자나는 남은 부분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아직 인간을 수사하고 있는 건지도 확인하시오.’ 남작이 말했다.
‘난 아직도 야수가 진짜 야수이거나 변형된 것이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겠소.’
‘지금까지는요.’ 엘제서가 말했다.
‘상처는 일종의 갈고리 모양 무기와 일치했습니다. 허나 발톱 무더기일지도 모를 일이네요.’
‘살인자가 희생자를 잡아먹나요?’
엘제서는 충격받은 듯 보였다.
‘아니요, 아가씨.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라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여자가 전부 있기는 한 것 같아요.’
‘흐음, 봐야 알겠죠.’
남작과 엘제서는 뒤로 물러섰다. 로자나는 약간 비틀거렸지만, 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야수는 기억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기억은 그녀를 다치게 할 수 없다.
골목의 입구 돔을 향해 걸어가자 햇빛이 차단되었다.
거리의 소음이 귀에 희미하게 들렸다.
몇 발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와 떨어져 있는 걸지도.
그녀는 조금 걸어가 담요 쪽으로 갔다.
강처럼 흐르는 붉은 피가 신발 사이로 파고들어 거리를 씻어내는 것 같았다.
벽 사이로 비명이 메아리쳤고, 몸뚱이가 찢겨나가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심장이 서늘해졌다.
관절이 쑤시고, 목은 진 때문에 따꼼거렸다.
한쪽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골목에 누군가와 함께 서 있었다.
긴 외투나 망토를 입은 키 큰 사람.
번쩍이는 녹색과 눈부시게 빛나는 광기 어린 붉은 눈.
그리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배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접촉을 깨고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이제, 그녀는 피투성이의 예술 위에 서서 들썩이는 어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창백한 얼굴이 보였다.
늙고, 애꾸눈이었다.
머리카락은 지저분했다.
여자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그녀는 야수였지만, 무엇도 알지 못했다.
뒤엉킨 충동이 자신을 몰아가자 살육의 욕망이 느껴졌다.
피부와 살점을 뜯어내자 망토가 몸을 휘감았다.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 뿐이었다.
죽여야만 한다.
그녀는 다시 접촉을 끊었다.
무엇도 알아내지 못했다.
무릎과 발목이 아파왔다.
남작이 그녀를 부축해 골목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또 저러네.’ 디콘이 툴툴거렸다.
‘쓸데없는 짓이야, 쓸데없는 짓.’
남작은 그녀의 옷깃을 풀어 바람이 통하게 했다.
‘어때요?’ 엘제서가 물었다.
‘둘 다 느꼈어요.’ 그녀가 말했다.
‘여자는 애꾸였어요.’
‘야수는?’ 남작이 물었다.
그녀는 집중했다. ‘야수는...’
적절한 말을 찾으려 노력해야만 했다.
‘야수는 두 사람입니다.’
디콘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쳤다.
‘뱃놈들.’ 그가 소리쳤다.
‘그럴 줄 알았지! 뱃놈들이었어.’
‘아니에요.’ 로자나가 말했다.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야수는 둘이지만, 몸은 하나에요.’
‘이건 또 뭔 미친 소리야.’
‘아니오, 대위.’ 남작이 말했다.
‘오풀스 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소. 야수는 나나 당신처럼 이성적이고 제정신인 평범한 사람이오...’
로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가끔씩, 뭐 기분이나 그런 게 그를 집어삼키면. 다른 무언가, 야수가 되는 거지.’
‘야수가 늑대인간인 걸까요?’ 엘제서가 물었다.
로자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던 것은 눈 뿐이었다.
‘예... 아니오... 어쩌면...’
‘응, 아까도 들은 말 같은데.’
남작은 경비대원에게 몸을 돌렸다.
‘대위, 좀 내버려 두면 좋겠소만. 아가씨는 분명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고, 자네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디콘은 조금 누그러들었다.
엘제서는 골목 안으로 후다닥 뛰어가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이거요.’ 그가 말했다.
‘이것도 해보세요...’
그는 그녀에게 자그마한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마르기 루트만의 칼입니다.’
‘누구요?’
‘마르기 루트만... 저... 골목에 있는 여자요.’
‘아, 예... 알만하네요...’
여자의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었다.
꽤 자주 있는 일이다.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야수에게 상처를 냈을지도 모르죠.’
그녀는 조임끈을 느슨히 풀고 보따리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칼자루를 느끼며 손 안에서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만약 그가 특정한 부상을 입었다면, 그 부상을 입은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겠죠. 수사를 진행할 방향을 주는 거라구요.’
그녀는 칼자루를 잡고 칼날을 들었다.
날이 스치며 눈을 베자 뺨이 쓰라렸다.
시야 절반이 붉어졌다가 검게 변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소리를 무시한 채, 그를 꼼짝도 못하게 하고는 칼날을 밀어넣었다.
‘리크키.’ 로자나가 말했다.
‘리크키라는 사람을 죽였군요.’
디콘은 다시 코웃음쳤다.
‘오래된 미제사건이 종결됐네요. 그래도 뭐라도 해냈습니다.’
‘날을 잡아 봐요.’ 엘제서가 제안했다.
로자나는 잠시 생각한 다음, 칼을 손가락으로 뒤집었다.
날카로웠지만 베이진 않았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녀가 칼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코에 칼끝을 대고 위로 들어올려, 평평한 부분을 이마에 맞추었다.
고드름마냥 싸늘했다.
‘이러면 도움이 되거든요.’
엘제서와 남작은 격려하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둘다 자신에게 흥미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칼날이 어둠을 찢었고, 날끝은 두툼한 의복에 박혔다.
날이 당겨졌다. 의복은 찢어졌다.
찢어지는 소리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길게 늘어났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녀는 영원히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때요?’ 누군가 물었다.
‘녹색 벨벳.’ 그녀가 말했다.
엘제서와 남작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녹색 벨벳이요.’ 그녀가 말했다.
‘남작님의 망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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